최용수 감독이 이번 북중미 월드컵 조기 탈락과 관련해 "전 세계가 잔치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초상집이 됐다"며 작심발언을 해 주목받고 있다.
7일 뉴스1 인터뷰에 따르면, 최 감독은 홍명보호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소극적 운영'을 지목했다. "역대급이라 평가된 멤버와 행운의 조편성 속에서 너무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상대 팀들이 한국을 두려워했음에도 정작 한국 대표팀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 대표팀이 가진 장점을 절반도 쏟아내지 못해 실패한 대회"라고 평가했다.

최 감독은 월드컵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아쉬움을 더했다.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잔치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축제인데 우리만 즐기지 못했다"며 "왜 우리는 다른 나라 경기를 애타게 봐야 하나.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2강 진출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다른 나라 경기를 주시해야 했던 상황 자체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 실패를 계기로 축구계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가 사회 전반에서 거세다. 축구팬과 일반 시민은 물론 국회와 정부까지 나서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최 감독은 무엇보다 '축구협회의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축구협회가 축구인들에게 외면받는 공간이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지금껏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 축구인들이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비극이다"라고 말문을 연 그는 일본축구협회를 비교 대상으로 제시했다. "일본축구협회는 일본 축구인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누구든지 JFA에 가서 현안을 이야기하고 조언하고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든 아마추어 지도자든 협회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전한 문화가 형성돼 있다"며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누군가'의 의견만 뚝 떨어졌던 곳 아니냐"고 반문했다.

축구인들의 집이어야 할 협회가 사조직처럼 운영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 감독은 사람도, 의견도 자유롭게 오가는 공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장기 비전 제시 역할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2001년부터 J리그에서 뛰었던 최 감독은 일본 축구의 일관된 방향성을 예로 들었다. "내가 처음 일본에 진출했을 때가 2001년이다. 그때도 JFA와 J리그는 각 구단 강화부장들을 수시로 불러 소통하며 청사진을 그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각 팀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모두가 똑같은 형태로 팀을 운영할 수는 없으나 일본 축구가, J리그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함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소년 육성법이나 훈련법 같은 것을 공유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만들어나갔고, 그것이 진정한 상생이라는 설명이다.
최 감독은 "눈앞에 것에만 급급하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며 "이제 대한축구협회도 일관된 정책, 모든 축구계를 아우르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대표팀 경기 결과가 좋으면 '만사 OK'라는 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소 한국 축구의 문제를 축구인 전체의 반성 사안으로 보는 최 감독은 이번에도 자성을 요구했다. "지금도 축구협회에서 일하는 축구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축구인을 기용하는 협회도, 협회에서 일하는 축구인도 '잠시 머물다 떠나는' 형식에 그치는 일이 적잖았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는 "일반인 행정가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축구인 출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하나의 뜻을 모아내야 하는데 지금까지 축구협회는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축구인들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단정하고, 협회 직원들은 곧 떠날 사람의 주문으로 치부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왔겠나"라고 반문했다.
최 감독은 미래 세대를 위한 노력 부족도 문제로 삼으며 스스로도 반성했다. "일본의 유소년들을 보면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축구를 한다. 보는 나도 즐거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축구하고 성장해야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어렸을 때부터 성적에 연연하면서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최 감독은 "축구협회나 K리그 차원에서 유소년 육성을 위한 장기 플랜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며 "일본과 한국 축구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은 그 미래에 대한 준비부터 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축구인들의 은퇴 후 진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의 축구인들은 은퇴 후 축구 지도자나 행정가 등 다양한 형태로 축구계에 계속 몸담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너무 방송이나 예능 쪽에 집중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지적을 받으면 나 역시 뜨끔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늦어지면 곤란하다. 달라질 한국 축구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축구인들이 진심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호소하며 말을 맺었다.
한편, 정부 주도의 'K-축구 혁신위원회'가 지난 6일 출범했다. 위원회에는 최휘영 문화체육부 장관을 비롯해 박지성 위원장, 이영표·박주호 해설위원, 유승민 대한체육회 회장, 김승희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유영근 변호사, 김대희 교수 등 체육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