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배경 :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은 중국력사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어놓았고 중국 조선족의 생활과 운명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어놓았다. 이로부터 중국 조선족은 나라의 주인으로서 새 생활, 새 력사를 창조하는 보람찬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은 조선족이 중국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였음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징표로 된다.

나라의 떳떳한 주인으로 된 중국 조선족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분야에서 보람차고도 성스러운 사업을 자주적으로 힘있게 벌려나갔으며 형제민족들과 더불어 건국 후 첫 3년 동안에 국민경제를 신속히 회복하였고 뒤이어 1950년대 중반에는 전면적이고도 대규모적인 사회주의 건설에 떨쳐나섰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진정으로 해방을 맞은 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의 옳바른 민족정책의 혜택 아래 민족문화 유산의 발굴과 민족문화 창작 사업을 활발히 펼쳐나갔다.
건국 초기 조선족 음악일군들과 교육일군들은 나라의 주인으로 된 기쁨 속에서 후대들의 성장을 위하여 좋은 음악작품 창작에 나섰다.
50년대 동요를 놓고 보면 대부분 행복한 생활의 요람을 만들어준 조국과 당, 수령에 대한 조선족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와 존경의 마음, 나라의 주인이 된 보람을 안고 사는 행복한 생활을 담은 노래들이다.

"우리의 생활 행복하고, 우리의 학습 즐거워요..." 소학생 시절에 열심히 불렀었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노래중 하나인 이 노래. 1955년에 탄생된 이 곡은 중국력사상 가장 저명한 조선족 작곡가의 한사람인 정률성이 작곡한 곡이다.

"여러분, 모주석은 이름이 아닙니다. 성이 모씨이고 우리 나라 주석이여서 모주석이라고 합니다. 모주석의 성함은 모택동이예요~"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모주석이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순진했던 어린 시절에 뜻도 모르고 무턱대고 따라 불렀던 이 노래는 건국 초기 어린이들의 기쁨과 깊은 애국주의를 노래하였다.
1951년에 창작된 이 곡은 땅을 주고 책가방을 메고 나라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신 당을 따라 나아가겠다는 희망찬 노래이다.


새 중국이 성립되고 뒤이어 자치주가 성립되면서 우리의 동요창작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1950년대에 공식출판물에 출판된 동요만 300여곡에 되며 그 중에서 우리가 즐겨 듣던 노래들로는 <우리는 행복해요>, <대기 따라 나가자> 이 밖에도 <제비>, <기차놀이>, <앵코타기> 등이 있다.

전신한 농촌의 어린이들이 즐겁게 학교로 가는 모습을 노래한 이 곡은 실제로 학교 끝나고 굽이굽이 도는 고개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주 불렀던 노래다. 어깨에 곱게 가방을 메고 깡충깡충 뛰여다니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루 또 하루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생활에 부대끼며 살다보면 어느덧 지나간 옛일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지만 어쩌다 듣게 되는 이런 동요들은 순수하고 천진란만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과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