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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主题汇 | 중국조선족작곡가-허원식

| 主题汇 | 중국조선족작곡가-허원식 长鼓TV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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导读:수양버들반갑게 맞아주고 바래여주는 마을 앞 수양버들 세월의 동무세월은 흘러가도 변함이 없이고향을


수양버들


반갑게 맞아주고 바래여주는 

마을 앞 수양버들 세월의 동무

세월은 흘러가도 변함이 없이

고향을 지켜선 새파란 수양버들


까치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친구들을 기다리는 고향의 동무

동구 밖 시내물에 머리채 감고

큰길목을 바라보는 정다운 수양버들


1981년에 창작된 이 노래 <수양버들>은 작곡가가 지난세기 20~30년대의 대중가요 음조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사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대중가요의 특징적인 잔잔한 음률에 예술가요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도입한 가요선률은 정서적이고 미적인 효과를 창출해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허원식 작곡가이다.




허원식(1935.7.19 - 2001.10.14)은 중국 조선족의 주요한 작곡가중의 한 사람이다. 심양음악학원에서 작곡을 체계적으로 배운 후 그는 관현악곡, 가극, 극음악, 가요, 무용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로 세인들을 놀래운 출중한 자곡가이다.


허원식 프로필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부회장

연변음악가협회 부주석

300여수의 우수 작품 창작

우수작곡상, 문화상, 장백산대상, 진달래래상 등 40차 수상

길림성 인사청과 문화청 대공1차 기입 받음

가곡집 《꽃피는 우리 살림》출판


길림성 룡정시 덕신향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소학교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흥취를 가졌고 음악을 자습해 연변사범학교 음악반에 입학하였다. 1953년에 허원식은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유일하게 연변가무단 성악조에 배치받게 되였다.


그러나 작곡가가 꿈인 허원식은 작곡리론을 자습해 1959년 9월에 심양음악학원 작곡학부에 입학하여 5년간 작곡을 전공하고 1961년 9월부터 심양음악학원 작곡학부의 편곡법 교원으로 있다가 1963년 1월에 연변가무단에 와서 창작실 부주임으로 사업하면서 많은 작품을 창작, 발표하였다.


허원식은 1954년에 처녀작을 발표한 뒤 바이올린 협주곡 <나의 고향>, 교향곡 <아침 해 솟는다> 등 4부, 기악곡 <저녁노을> 등 16부, 교성곡 <두만강의 노래> 등 많은 기악작품과 무용곡을 창작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심양음악학원 3학년때 쓴 작품 <나의 고향>은 1959년 심양음악학원 국경헌례음악회에서 염태산 독주, 왕중감 지휘, 심양음악학원 관현악대의 연주로 공연되였고 1961년 남녕에서 열린 고향음악좌담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후 중앙인민방송국, 료녕인민방송국을 통하여 수차 방송되였다. <나의 고향>은 바이올린협주곡이란 대형 기악곡 형식으로 피와 땀으로 보위하고 건설한 고향에 대한 향토애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선명한 민족특색을 띤 이 협주곡은 작곡가의 민족음악 소양과 음악 표현능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성공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작곡가 허원식의 작품중에서 극음악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창작한 극음악들로는 일찍 1963년에 쓴 가극 <고령감의 꿈>, 1964년에 쓴 가극 <조만근>, 1965년에 쓴 연극 <산촌의 소나기>의 음악, 신창극 <룡강송>의 음악, 1978년에 쓴 연극 <장백의 아들>의 음악, 1960년대에 쓴 연극 <눈 속에 핀 꽃>의 음악 무려 6부에 달한다.


허원식의 극음악은 민족음악의 뿌리에 그 기본바탕을 두고 극성과 고도로 밀착시키는 선률 작법과 높은 작곡 기교로 창작되였고 극성을 위한 기술적처리에서 독특한 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편곡의 종적면에서 다성수법이 훌륭히 구현되고 있으며 순수한 극성음악인 경우에도 가능한 일체 공간을 리용하여 다성적으로 서술하였다.


허원식의 가극음악 창작에는 서양음악 수법도 극성에 맞고 개성이 있게 응용되여있다. 가장 단순한 중복법도 허원식의 손에서는 재치있게 응용되여 증복법의 따분함과 지루함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 근거하여 임의로 중복하여 쓰고 있다. 선률 진행에서 굴곡은 가극음악을 포함하여 허원식이 많이 쓰고 있는 수법이다.


'연변의 4인 강력집단'과 가극 <아리랑>


허원식은 창작생애 40여년간 동료인 최삼명, 안국민, 최창규와 함께 많은 명작을 창작하여 연변음악의 발전과 중국음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사람들은 이 네분을 로씨야음악의 5인 강력집단에 비유하면서 '연변의 4인 강력집단'이라고 불렀다.


왼쪽부터 최창규, 최삼명, 안국민, 허원식


5막 7장으로 된 가극 <아리랑>의 음악창작은 최삼명, 안국민, 허원식, 최창규가 담당했는데 어떤 풍격, 어떤 방향으로 창작할 것인가에 대하여 네 사람이 함께 토론연구하여 의견을 통일한 후 각기 분공하여 작곡하였다. 그때는 시장경제에 금방 진입한 때라 이런 대형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부류도 많았지만 4인의 단합된 힘은 강유력하였다. 바로 그 단합된 힘과 창작정신이 가극 <아리랑>과 같은 명작을 만들어냈고 연변 가극의 획기적 성공에 큰 기여를 하였다.


가극 <아리랑>은 1989년 12월 13일에 연길예술극장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고 연길에서 20여차 공연하고 또 전국가극콩쿠르 우수상, 문화부 우수상, 음악상, 문화 대상을 수상하였다.


허원식은 일찍 1950년대에 가요 <북산처녀> 등 10여수를 세상에 내 놓았고 1960년대에는 <벌판에 붉은 해 솟았네> 등 가요와 극음악 16수, 1970년대에는 <백산의 붉은 꽃> 등 가요 20수, 1980년대에는 <사랑하는 내 나라> 등 가요 18수, 1990년대에도 많은 가요들을 창작, 발표하였다.


백산의  붉은 꽃

<백산의 붉은 꽃>은 연극 《장백의 봄우뢰》의 주제음악으로서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백산의 붉은 꽃>에서 3절 가사를 똑같은 설률로 된 절가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3절 가사의 주요한 주제음조를 보류하면서 번마다 새로운 련결음악, 결속음악을 보태여 절마다 새로운 풍미를 알리면서 주제음악을 돌출히 강조하였다.


<백산의 붉은 꽃>은 그 음악언어가 매력적이고 형식이 새로우며 성공한 작품들의 경험을 잘 살려 자기의 독특한 풍격을 표현한 성공적인 작품이다.



이 곡을 작사한 한원국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다 만든 노래를 듣고 저는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던 수법을 이 작곡자가 썼습니다. 시작부터 대단히 높았는데 당시 시작이 높은 곡이 연변에 많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연변의 노래들은 시작은 낮았다가 후렴이 올라가는 식입니다. 근데 작곡자는 이걸 바꿔놓았지요. 이 곡은 인차 보급되였고 또 중국음악가협회에서 꾸리는 간행물에 한어로 번역되여 나갔습니다. 외국에까지 이 노래가 나갔습니다."


벌판에 붉은 해 솟았네

1960년대는 지식청년들이 본격적으로 산골로, 농촌으로, 고향으로 내려가던 때이다. 이 시기는 지식청년들 뿐만 아니라 기관간부들도 대거 하방되였는데 1969년 12월말까지 주직속기관에서만 해도 1300여명 간부들이 농촌에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지식청년들과 관련된 노래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가 바로 1968년에 나온 <벌판에 붉은 해 솟았네>라고 할 수 있다.


1983년말에는 66수의 음악작품으로 묶어진 가곡집《꽃 피는 우리 살림》을 세상에 내놓았다.



허원식이 작곡한 많은 가요들은 민족음악에 튼튼히 뿌리를 박은데다가 현대적 미감이 가미되여있어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또한 노래 창작에서 독창성을 매우 강조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을 보면 개성이 독특한 것이 특징으로 되고 있고 가요의 주제사상을 선명하게 표달하기 위하여 주도선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통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선률과 절주의 발전에 탐구의 초점을 두고 독특한 기교와 수법으로 작품의 새로운 풍격을 창조하였다. 특히 선률에 민족음악의 정서를 도입하기 위하여 그는 의식적으로 민요, 판소리, 창극과 많이 접촉하면서 민족음악의 진주를 주어다가 현대적 선률을 장식하였다.


이 밖에도 허원식은 일반 가요를 창작하는 한편 차원이 높은 성악협주곡 <류아자 선생에게 화답함>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는 건국 30주년 기념 전국문예회연에서 2등상을 수여받았다. 이 성악협주곡은 작품의 사상예술과 성악배우들의 성악기교를 유감없이 과시한 성곡적인 작품이다.



허원식은 창작사업은 고통스럽고 간고한 로동이라고 한다. 창작은 많은 연구와 피타는 노력을 대가로 하지만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을 때 오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 작품이 성공하는 데는 함께 사업하는 동료들, 이 작품을 연창, 연주하는 배우들을 망라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혈이 슴배여있다고 한다.


허원식은 병환으로 2001년 10월에 별세하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주옥 같은 작품들은 조선족음악의 소중한 유산으로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래원 : 인민넷, 길림신문, 《20세기 중국조선족 음악문화》- 종합



责编:郑慧

审稿:文实

编辑:崔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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