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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主题汇 | 중국조선족작곡가-정준갑

| 主题汇 | 중국조선족작곡가-정준갑 长鼓TV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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导读:정준갑 프로필1941년 8월 25일(음력 7월 3일) 료녕성 무순시 하장당에서 출생1953년 7월


정준갑 프로필

1941년 8월 25일(음력 7월 3일) 료녕성 무순시 하장당에서 출생

1953년 7월 무순시 장당향 장당조선족소학교 졸업

1956년 7월 무순시조선족중학교(초중) 졸업

1959년 7월 심양시조선족중학교(고중) 졸업

1959년 9월 연변예술학교 작곡전공에 입학

1962년 7월 길림예술전문학교(현 길림예술학원) 음악학부 작곡전공 졸업

1962년 9월부터 연변예술학교 음악리론교원, 재직중 1973년 천진음악학원 연수, 1980년부터 상해음악학원 작곡학부에서 3년간 연수

1984년 1월 연변예술학교 부교장

1988년 6월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현 연변대학 예술학원) 부원장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성악학회 리사

중국조선민족음악연구회 상무리사 겸 민족음악위원회 주임

연변음악가협회 상무리사 겸 민족음악위원회 주임

1995념 10월 30일 별세


주요작품


대중가요 <경사가 났네>, <밀림은 나의 집>, <내 고향 상화> 등 수십수

단소독주곡 <고원에도 만풍년일세>

해금독주곡 <도라지>

목금독주곡 <고향의 봄>

피아노독주곡 <아리랑조곡>

교향시 <심청>

무용곡 <농악무>, <3인북춤>

저서 《조선민족민간음악》 등을 발표


정준갑은 1941년 료녕성 무순시 교구 하장당촌 농민의 가정에서 맏아들로 태여났다. 소학교때부터 연극도 하고 노래를 잘 불러 소문이 났으며 하모니카, 퉁소를 몹시 즐겨 음악선생님의 총애를 받았다.


음악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음악가로 키우겠다느니, 미술가로 키우겠다느니 음악, 미술 두 선생님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음악의 길을 택한 정준갑에게 두 선생님은 힘을 모아 바이올린을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20세기 80년대 중반, 교원들의 월로임이 얼마 되지도 않을 시기 바이올린을 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는 정준갑의 휘황한 전도를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959년 고중을 졸업한 정준갑은 추천으로 중앙민족학원에 갈 수 있었지만 단연히 뿌리치고 연변예술학교 작곡전공에 입학하였다. 전업은 서양작곡기법이였지만 조선음악에 큰 흥취를 갖고 성악계의 선배들로부터 판소리, 민요 등 민족음악을 학습하는 데 정력을 몰부었다. 재학시 학생회 주석으로 활약하면서 <뜨락또르운전수>, <가야금산조> 등 민족기악곡을 창작하는 재질을 보였다.


1961년 9월에는 장춘에 있는 길림예술전문학교(현 길림예술학원) 음악학부 작곡전공에 전학하여 1년 동안의 학습을 거쳐 대학과정을 마치고 모교 연변예술학교로 돌아와서 음악교육사업에 뛰여들었다.


연변예술학교가 해산되였던 1970년부터 2년 동안은 연변군중예술관의 음악지도원으로 있다가 1972년에 연변예술학교가 회복되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이듬해 천진음악학원에서 연수하고 돌아와 음악리론과목의 강의를 맡았고 1980년 9월부터 3년 동안 상해음악학원 작곡학부에서 더 배우고 돌아왔다. 1984년 1월에는 연변예술학교가 예술학원으로 승격되자 부원장의 직무를 맡아 민족음악부문을 책임지고 민족악기 개량을 위하여 많은 사업을 하였다.


정준갑은 민족전통음악의 발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모든 정력을 우리 민족의 음악발전을 위한 사업에 몰부어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는 우리의 음악에서 '옛 것이 오늘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자'면 발전하는 민족음악의 형세에 발맞추어 민족악기를 개량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족악기연구소 성원들을 이끌고 꾸준한 연구를 거쳐 여러 종류 민족악기 개량에 성공하였다. 1986년에 저대(대금)가 길림성 과학기술연구성과상을, 단소와 새납이 중앙문화부 과학기술연구성과상을 받았다. 그리고 민족음악 실천에서 모색한 경험들을 총화하여 《조선민족장단에 대하여》, 《조신민족민간음악》 등의 저서를 펴냈고 여러 편의 론문을 썼으며 《고려음악인지요록》을 번역하였다. 특히 《조신민족민간음악》은 가치가 높은 저서이다. 이는 다른 어떤 저서와 달리 궁정음악으로부터가 아니라 민요로부터 토대를 세워 우리의 민족음악을 계통적으로 서술한 것이 특징적이다.


정준갑은 감정이 풍부하고 재능있는 작곡가이다. 그는 정열적이고 독창적인 좋은 음악작품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학창시절 창작한 <출렁이네>, 사업에 참가한 다음 <즐거운 저녁>(정준갑 작사), <경사가 났네>(리룡영 작사), <내 고향 상화>(리룡영 작사) 등 가요와 <우리는 희망찬 소선대원>(김두천 작사) 등 동요곡을 작곡하였다. 


<경사가 났네>는 작곡전공 학생들을 거느리고 농촌에 내려가 작곡한 노래로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정서를 잘 표현하였고 건드러진 선률로 풍년맞은 농민들의 기쁨을 생동하게 노래하였다.


<경사가 났네>



문화대혁명으로 하여 금방 창작열조가 올랐던 초창기에 찬서리 맞아 여러해 동안 창작의 침체기에 들어섰다가 1975년에 <산골에도 만풍년일세>(김득만 작사) 등 가요와 <잊지 않아요>(강일훈 작사), <칭찬하지요>(김룡덕 작사) 등 동요곡을 창작하였다.


10년동란이 자나간 다음 <밀림은 나의 집>(김성휘 작사), <2천년에로 나래쳐가자>(김득만 작사), <10월의 단풍>(김득만 작사) 등 가요와 <기쁘다고 방실>(한록순 작사), <붉은 별 볼 때마다>(한원국 작사) 등 동요들을 작곡하였다. 20세기 80년대부터 단소독주곡 <고원에도 만풍년일세>, 목금독주곡 <고향의 봄>, 해금독주곡 <도라지>, 무용곡 <농악무>, <풍년든 탈곡장>, <백학이 난다>, <콩쥐와 팥쥐>, 피아노독주곡 <아리랑조곡>, <민요를 주제로 한 창의곡>, 교향시 <심청> 등도 작곡하였다.


그의 음악창작에서 으뜸가는 특점은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다. 노래거나 민족기악곡에서는 물론이고 피아노곡에서까지도 그 체제나 음악풍격에서 민족의 혼을 살렸다. 그는 노래나 기악곡에서 민족조식의 응용에 많은 중시를 돌리고 민족장단을 씀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나 특징적인 절주형태를 추구하면서 개성이 강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 또 하나의 특점은 대부분 작품이 농촌을 소재로 씌여진 것이다.


<산골에도 만풍년일세>



정준갑은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에서 미국순회공연, 일본순회공연, 한국순회공연을 친히 조직하고 대오를 인솔하여 외국 벗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그램의 작성에서 민족특점을 살리는 데 각별한 주의를 돌려 중국 특색의 조선민족예술을 외국에 소개함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는 친척방문차로 조선과 한국에 다녀온 일이 있는데 이런 사사로운 나들이에서도 언제나 학교의 민족음악대오건설을 위하여 곳곳에서 민족음악자료를 얻어 학교에 바쳤으며 여러 부문과 련계하여 민족기악, 민족성악 인재들을 파견하여 연수를 조직하였다. 그의 공적이나 사적인 모든 활동은 언제든 민족음악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음악가 정준갑은 중국조선민족음악학계의 주요일군중의 한 사람이였다. 그는 기악곡창작, 가요창작에서 좋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특히 조선민족전통음악의 발굴과 정리, 조선민족악기 개량 등의 사업에서 매우 돌출한 업적을 남겼다.


정준갑은 음악의 길에 첫 발자국을 들여놓던 때로부터 마지막 시각까지 민족음악을 위하여 살았고 민족음악에 모든 것을 바쳤다. 민족음악에서 거둔 그의 혁혁한 성과로 하여 그의 일생이 더욱 가치 높게 평가된다.


래원: 《조선민족민간음악》, 《정준갑작곡집》- 종합



责编:郑慧

审稿:文实

编辑:崔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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