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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저울을 부탁해

| 수필 | 저울을 부탁해 长鼓TV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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导读:수필저울을 부탁해- 김단 “세살 쯤 돼보이는 남자아이다.

수필

저울을 부탁해

김단


세살 쯤 돼보이는 남자아이다. 수줍은듯 고사리 같은 두손으로 자신의 ‘고추’를 가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곳은 녀자목욕탕, 알몸으로 95번 옷보관함을 향하여 ‘질주’하다가 나는 엄마와 함께 녀자목욕탕에 들어온 이 남자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 멈칫하는 순간, 내 몸의 살들이 관성에 의해 마구 출렁거렸다. ‘남자 앞에서 이게 웬 망신이야?’ 그냥 세살배기 아이일 뿐인데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고 천천히 그 남자아이 옆을 스쳐지나갔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서 허둥대는 나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


“어휴, 며칠 쉬였더니만 몸이 무거워 죽겠네.”


위기의 순간에 고맙게도 때밀이아주머니가 남자아이의 시선을 앗아가는 바람에 겨우 민망스러운 장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속옷 사이로 흘러내리는 살 때문에 무척이나 괴로운 모양이였다.


철컹- 저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동안 먹고 자기만 했더니 바로 살이 올랐네. 올 겨울에는 장춘에 가서 멋진 모피외투를 한벌 사입어야 하는데 몸이 이렇게 불어서 어쩌나?…”


아닌게아니라 아주머니의 등살과 배살이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멋진 옷을 사입으려는 소망이 깨여진 아주머니의 뒤모습은 우습강스러우면서도 슬퍼보였다.


나는 다시 시선을 아이한테로 돌렸다. 몸을 가렸던 아이의 손에는 어느새 장난감이 쥐여져있었다. 아이는 이 환경에 완전히 적응된듯 경계를 풀고 나한테 생긋 웃어보였다. 아이의 화사한 미소는 축축한 습기로 가득찬 공간의 무게를 가뿐히 덜어주는 상 싶었다. 남자아이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본능적으로 은밀한 부위를 가렸던 나의 두팔도 서서히 풀렸다.


“아이구 꼬맹이, 너 몇살이야?”


모피외투를 잠시 잊고 녀자목욕탕의 청일점을 발견한 때밀이아주머니는 아이를 향해 첨벙첨벙 걸어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육중한 몸의 이곳저곳에서 대륙이 뒤틀리는 듯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도 처음 보는 광경에, 곧 자기를 덮칠 것 같은 아주머니의 어둑한 그림자에 어리둥절해서 엄마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보기도 하고 나한테 시선을 돌리기도 하였다. 나는 아이를 낳고도 미끈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엄마와 살두덩이인 때밀이아주머니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할 신세가 아닌데도 말이다.



서른이 지나서부터 아니, 정확하게 결혼후부터 내 몸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스피드 스케이트로 다져진 굵고 못생긴 허벅지가 콤플렉스라고 항상 투덜거리며 다녔었는데 요즘은 그 탄탄했던 허벅지마저 덕지덕지 지방으로 채워져 움직이기만 하면 살들이 하들하들한 초두부처럼 흐느적거린다. 게다가 군살 하나없이 잘록했던 옆구리마저 솜뭉치 같은 살들이 비죽비죽 비집고 나와 꼴불견이다. 어디 그 뿐인가? 미끈하던 어깨선도 팔뚝에 오른 살 때문에 두터워져서 곡선이 선명하지 않다. 직업 특성상 엉덩이는 하루종일 의자를 뜰 새가 없고 쌓여지는 여러가지 스트레스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량으로 해소가 된다. 몸관리가 필요 없는 20대에는 아침에 눈만 뜨면 몸무게부터 체크했었다. 간혹 몸무게가 0.5킬로그람만 불어나도 란리법석을 떨면서 하루종일 일부러 뛰여다니지 않으면 배가 등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굶었었는데 정작 관리가 필요한 지금은 설사 몸무게가 최고치를 기록한다 해도 입은 심심할 사이가 없다. ‘맛 있게 먹으면 0칼로리란다… 어차피 결혼을 했으니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뭐… 오늘까지만 먹고 다이어트는 래일부터 하자.’라는 심리상태로 여러가지 핑게를 대면서 폭식을 한다. 이런 악순환은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온다. ‘괜찮겠지, 괜찮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서 먹은 음식들은 지방이라는 가면을 쓰고 내 몸 구석구석에 둥지를 튼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소? 임신이라도 한 거 아니요?” 변화된 내 모습에 사람들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펑퍼짐해진 엉덩이도 앉으면 의자를 꽉 메운다. 그러나 전혀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편해진다. 불어난 몸무게든, 가시 박힌 말이든, 배고프지 않음에도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든… 

 


세상은 신기하고 다채로와졌지만 개미 채바퀴 돌듯 집-일터-집을 오가는 내 일상은 많이 단조로와졌다. 직장에서는 컴퓨터와 머리를 맞대고 휴일에는 휴대폰의 현란한 인터넷세상 속으로 빠져든다. 배고프면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면 그만이다. 내 손목시계는 나에게 육체를 움직일 시간을 내여주지 않는다. 외출도 최대한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다. 지갑을 꼭 챙기지 않아도 된다. 게으른 나머지 이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물건도 하나, 둘 줄여간다. 물건을 사든, 밥을 먹든, 료금을 내든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자동으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더우기 직접 운전하지 않고도 료금만 지불하면 ‘전문기사’까지 딸린 꽤 괜찮은 차에 앉아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딱딱하던 뉴스원고에도 요즘은 생각지 못한 기술들이 연거퍼 기사에 실린다. 그런 뉴스를 번역할 때면 신기술에 한번 놀라고 4차 산업혁명이 현재 곳곳에서 마법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방망이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다. “앞으로는 허다한 일(직업)을 기계가 대체한대… 혹시 이러다 언젠가는 인간이 로보트와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가? 그렇게 된다면… 로보트와 사람이 함께 잠을? 과연 행복할가?” 한창 결혼에 대한 환상에 부풀어있는 미혼친구의 엉뚱한 발상이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인간에 의해 바뀌고 있으나 정작 나한테는 ‘내적 지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한가닥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내 감성이 서서히 무뎌졌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서 숨겨둔 ‘애인’과 같은 존재였다. 이를 통해 나는 진정한 자신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고 늘 형용할 수 없는 희열과 설레임에 잠을 설치군 했다. 이렇게 쓰면 좋을가, 저렇게 쓰면 더 괜찮지 않을가? 누가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지도 않는데 나는 하루종일 방구석에 들어박혀서 같은 어구를 이리 주물럭, 저리 주물럭하면서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내가 꽁꽁 숨겨둔 이 ‘애인’의 존재를 발견하였다. “그간 이런 재간이 있으면서 숨기고 살았다니… 잘 썼네, 글쓰기는 이젠 식은 죽 먹기겠네. 시간 있으면 내 이름으로 론문이나 하나 써주지 그래…”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질 때는 욕망이 시작되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기름기 잘잘 흐르는 인정과 달짝지근한 속삭임에 유혹되여 외람된 욕심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작은 허영심 하나도 굴리고굴리니 눈덩이처럼 되였다. 그 속에 갇힌 자아는 거대한 껍데기의 허위적인 보호에 눈이 메여 라태해진다.


반면 “보잘것없는 걸 여러편 쓰기보다 묵직한 작품 하나를 내놓는 게 나아… 겉은 화려한데 내용은 없구만…” 하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대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한없이 부족한 남자친구여도 친정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듯한 중압감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이 ‘애인’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심리적 갈등과 하늘이 무너져도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격렬한 감정이 범벅이 되여 머리가 늘 혼란스럽다. 누군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나는 자신을 부단히 ‘학대’한다. 제 마음대로 동그라미, 네모와 같은 틀을 만들어놓고 그 곳에 자신을 억지로 쑤셔넣는다. 아니, 감금해버린다. 내 생각은 점점 꼬여지고 비틀어지고 변형되여 꺾어지기 직전이다. 너무 부풀어있는 꿈과 퀘퀘한 현실,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나는 무척이나 괴롭다. 뗄래야 뗄 수 없이 중독돼버렸던 ‘애인’도 어느새 무뎌진 내 감성의 틈새로 탈출을 시도한다. 나는 온갖 힘을 다해 가까스로 그를 잡아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속삭인다. “약해졌니? 넌 잘하고 있어. 쉽게 무너지면 안되는 거야. 이름처럼 단단해야지… 싹 다 비우고 나면 내가 보일 거야.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의 나는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 남자아이 만도 당차지 못하다. 자신과 다른 신체구조를 가진 무리 속에서 아이는 얼마나 충격적이였을가? 허나 불안에 흔들리던 남자아이의 눈은 완벽히 그 상황에 적응하였고 어설프게 몸을 가리고 있던 고사리 같은 손에 장난감을 쥐고 뭇녀성들을 향해 웃어주는 여유까지 생겨났다. 어릴 적 나는 동네남자아이들이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을 보고 흉내를 내다가 한겨울에 바지가랭이를 적신 적이 있다. 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남녀간의 생리적 구별점을 알게 되였고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였다. 그 뿐이 아니다. 내가 3살 적에 친척할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할머니가 낡은 옷가지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따리에 챙겨넣는 것을 보고 내가 “할머니 물건만 보따리에 넣고 할머니 물건이 아닌 것은 가져가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친척할머니를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의 똑 부러진 내 모습은 옛 사진과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성장은 나에게 갈수록 의젓하지 못한 변화를 주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래저래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자아를 억압한 ‘가짜’ 안에서 나는 병들고 내가 서있던 자리도 늘 균형이 깨여져있었다.


기술이 세상을 더욱 살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사람들도 ‘최소한’의 것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쇼핑중독인 친구도 즐겨입는 옷만 남겨두고 아까워서 감히 버리지 못했던 옷들과 과감히 ‘리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부부가 새집을 장식하면서 ‘비우는 것’으로 예쁘게 꾸몄으며 물건을 살 때에도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선택했다고 한다.


시대는 본격적으로 ‘체지방태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나는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허지만 일단 일사불란하게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마음의 노예’들부터 풀어줘야 겠다. 옷차림만 가볍게 할 것이 아니라 내 머리를 팽창시켰던 생각의 파편들도 하나 남김없이 잔뿌리까지 깡그리 뽑아버려야겠다. 그리고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신 있게 웨쳐보리라, “저울을 부탁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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