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국가급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지역 및 신청단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보호단위: 왕청현문화관
전승인: 김명춘
농악무란?
농악무는 조선족인민들이 장기간의 사회생산과 활동중에서 창조하고 계승해 내려온 연주와 노래, 춤을 함께 곁들인 종합성 민간예술로써 전통 세시풍속 행사나 명절에 즐겨 표현하는 종합성적인 표현예술이다.
농악무는 이주문화의 꽃

농악무는 조선반도에서 조선왕조 후반기에 형성된 악(乐), 희(戏), 무(舞) 의 성격을 갖춘 농사와 관련된 전통민속놀이이다. 농악무는 19세기 중엽으로부터 살길을 찾아 중국대륙으로 이주하는 이주민들의 쪽박에 든 벼씨와 함께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전파되였다. 조선족농악은 조선족의 이주와 맥락을 같이하게 된다.
"상모춤의 고장"이라 불리는 왕청현 일대에서는 1928년경에 계관향 영벽라자에서 처음 농악놀이가 시작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강원도 농민들이 이곳 영벽에 이주해오면서 살얼음을 깨고 나무뿌리를 뽑아 논을 일구고 벼씨를 뿌려 농사를 지으면서 쉼시간이 되면 밭머리에 세워둔 농기를 둘러싸고 농악놀이를 벌렸다고 한다.
그후 30년대로부터 동북3성에 조선족집단부락이 늘어나면서 연변을 중심으로 대량의 농악대가 형성되고 중국땅에서 농악무가 이주문화의 꽃으로 피여나기 시작하였다.
농악을 무대예술로 승화

이주 초기 조선족농악은 두레농악, 기원농악, 걸립농악, 연예농악 등 네가지 류형으로 조선반도의 농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951년 연변문공단(연변가무단의 전신)의 무용교원 겸 안무가였던 조득현선생에 의해 무대예술화한 '농악무'가 탄생하면서 조선족농악은 새로운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그는 원 농악놀이를 기반으로 더욱 집약되고 승화된 조무형식의 예술무용작품을 창작하여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창립 '9.3' 경축무대에 올렸다.
그의 농악무는 사물잡이며 무용수 배치와 상모 사용, 복식 등 여러 면에서 농악놀이와 달랐다. 사물장단에 맞추어 새납의 쩌렁쩌렁한 울림 속에서 진행되는 이 무용은 뛰고 도는 남성성격의 약동적인 춤이 위주이면서 집약적 조약, 집체로 상모돌리기, 솔로들의 특기, 대형변화를 이루는 녀성들의 도도리, 장상모의 특기표현 등 농악놀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조적인 전형표현들로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했다.
이때로부터 마당이나 밭머리에서 펼치던 '농악놀이'가 악기반주와 무용이 어우러진 무대예술로 되였고 기존의 신앙을 주축으로 하던 농악놀이는 점차 상모춤을 중심으로 예술화되면서 풍작의 기쁨을 표현하고 분발매진하는 열정적인 조선족의 형상을 부각하였다.
Δ 농악무<수확의 기쁨>
농악무의 최고 표현방식

상모춤은 농악무 가운데서도 고난도의 기교와 예술적 가치가 가장 뛰여난 예술표현 형식으로 보통 상모춤은 농악무 중 최고조인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상모는 띠의 길고 짧음에 따라 단상모, 중상모, 장상모로 나뉘는데 중상모는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상모이다. 상모돌리기에는 이왕의 '외상모'와 '량상모'에서 '꼭두상'과 '흔들기', '상모도돌이', '이슬털기'로 발전하였으며 또 새롭게 창작된 '천권기교법(穿圈技法)'과 '삼색띠돌리기기교법'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조선족상모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이다. 현재 농악무의 전승 보유자인 김명춘이 사용하는 대상모는 33메터로써 세계에서 가장 긴 상모로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2005년부터 우리 나라 문화부에서는 전국적으로 무형문화유산의 발굴과 신청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려나갔고 2006년 5월, 조선족농악무의 가장 대표적이며 가장 절정을 이루는 상모춤이 국가급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2008년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는 조선족농악무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신청에 도전을 걸었고 2009년 9월 중국조선족농악무는 중국의 유일한 무용류종목으로 드디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작명부'에 등재되였다.
우리 민족 지혜와 창조의 결정체
来源 | 综合《中国朝鲜族非物质文化遗产漫游》民族出版社, 吉林朝鲜文报
编辑 排版 | 崔莲花
审稿 | 文实
监制 | 郑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