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성급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2012년 '최대규모의 아박춤공연' 기네스세계기록
신청단위 및 신청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보호단위: 안도현문화관, 해림시조선족문화관
전승인: 강덕수
아박춤
아박춤은 아박이라는 타악기를 손에 끼고 추는 민속무용이다. 아박은 상아거나 고래뼈, 소뼈, 사슴뿔 따위를 길쭉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서 사슴가죽끈에 꿰고 오색명주실로 술을 단 작은 박(拍)을 말한다. 옛날에 무기(舞妓)가 두손에 박을 마주잡고 춤을 춘다고 해서 아박춤이라고 했다고 한다.
기원과 발전
아박춤의 기원은 매우 오랜데 이는 천여년 전의 고구려시기에 연기된 궁중무용이였다. 아박춤의 전신은 동동춤이였는데 고구려시기에 산생하여서부터 고려시기에 이르기까지 동동춤으로 불리우다가 조선시기에 들어서서 《악학궤범》이란 책에서 '아박춤'으로 기술하였다. 아박춤은 궁중무용인 만큼 오래동안 궁중에서만 연기되여오다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궁중의 무녀들이 민간에 흩어져내려가면서 아박춤과 같은 궁중무용이 민간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Δ아박춤
중국 조선족의 아박춤은 곡절 많고 눈물겨운 이주력사와 갈라놓을 수 없다. 1923년 한 겨울, 조선 북부의 이주민들이 안도현 송화골의 산골짜기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어둠의 장막이 내리드리운 뒤였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피로로 하여 사람들은 더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사나운 눈보라는 짚신과 홑옷밖에 걸치지 않은 그들을 사정없이 후려쳤고 승냥이떼들은 호시탐탐 사람들을 노렸다. 이때 조선에서 무녀로 있었던 한 녀인이 도끼로 참나무를 쪼개여 사람들의 손에 쥐여주면서 같이 춤을 추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이 덩달아 춤을 추면서 막대기를 두드리니 들짐승들도 달아나고 추위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중국 조선족들 속에서 처음으로 연기된 아박춤이였다. 이렇게 되여 오랜 옛날의 궁중무용이 조선족의 민속춤으로 변모하였다.
특징 및 형식
아박춤은 그 력사적 유래가 오래되였으며 민족적 특색이 강하다. 아박춤은 동작이 휘늘어지면서도 날랜 멋이 스며있으며 전반 률동에서 손, 발, 몸을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점이 있다. 또한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후에는 당지의 생활과 습관에 맞게 새롭게 편성되였으며 전통적인 아박춤의 풍격바탕을 잃지 않으면서 독특한 지방특색을 갖춘 춤으로 변모되였다.
현재 연기되는 아박춤을 고찰해보면 아래와 같은 형태가 있다.
첫째, 아박춤의 연기자는 12명으로 구성되고 조선족 전통복식으로 몸치레를 하며 가슴앞의 옥띠에 아박 두쪽을 꽂는다. 무대 량쪽으로부터 무대 중심을 향해 느린 ‘오금추여걸음’으로 등장한다.
둘째, 연기자들은 량쪽에 갈라서서 서로 마주하고 례를 올린다.
셋째, 선자리에서 량옆으로 '방석돌이'동작을 하여 살풀이를 하며 계속하여 천천히 웃몸을 세운다.
넷째, 두손으로 천천히 아박을 뽑아 가슴앞에 펴면서 아박을 친다.
다섯째, 빠른 장단에 맞추어 아박치기 춤가락을 펼치는데 두 무릎을 엇바꾸어가며 '메고펴기'위치에서 아박치기, 가슴에서 '교차손'을 하고 아박치기, 아박을 세워 머리 우로 엇바꾸어 땅을 치며 돌아가기, '연풍대도도리'를 하며 아박치기 등 동작을 련결한다.
Δ牙拍舞(출처: CCTV)
전승과 보호
아박춤은 길림성 연변주 안도현 명월진, 만보진, 석문진, 영경향 일대에서 집단적으로 발전시킨 민간무용 항목으로 민속활동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박춤은 재래의 궁정무용의 틀과 우아성을 떠나 현시대 농민들의 투박하고 락천적인 성격이 잘 반영되여있다. 조선족아박춤은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 비준한 성급무형문화유산대표종목중의 하나이다. 분포지역은 길림성 연변지역과 흑룡강성 해림지역이며 전승단위는 길림성 안도현문화관과 흑룡강성 해림시조선족문화관이다. 대표적 기능보유자는 천금순과 김성춘이다.
来源 |《中国朝鲜族非物质文化遗产漫游》民族出版社
编辑 排版 | 崔莲花
审稿 | 文实
监制 | 郑慧


